수용성 낮고 사회통합 대비도 미흡
정부·국회는 이민청 설립 차일피일
선제·실효적 이민·다문화 정책 시급
2년 전 80대 아버지가 쓰러져 지방의 종합병원에 입원했을 때 간병인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코로나19 사태가 닥쳐 간병인들도 일하기를 꺼릴 때였다. 수소문 끝에 조선족 출신 간병인을 겨우 구할 수 있었다. 노인 환자를 24시간 돌보는 건 무척 힘든 일이다. 그분이 몇 주 동안 아버지를 정성껏 보살펴줘서 위기를 넘겼다. 지금도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인 간병인 중 65%가량이 중국 동포다.
국내 이주 외국인 노동자 상당수가 내국인이 기피하는 ‘3D’(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직종에서 일하고 있다. 농·어업, 제조업, 건설업 등 산업 현장은 외국인 노동자 없이 지탱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농촌은 베트남인, 조선소는 우즈베키스탄인, 이삿짐업계는 몽골인이 없으면 안 돌아간다는 말이 회자된 지 오래다. 지방대는 중국 등 외국인 유학생이 없으면 운영이 어려울 정도다. 이미 전남 영암과 충북 음성은 주민 5명 중 1명이 외국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에 석 달 이상 거주한 외국인이 246만명을 기록해 ‘역대 최다’를 경신했다. 국내 인구의 4.8%로, 100명 중 5명이 외국인인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총인구 중 외국인 주민 비율이 5%를 넘으면 다문화·다인종 국가로 분류한다. 아시아 첫 다문화 국가 진입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다. 2050년에는 국내 인구 10명 중 1명이 외국인이나 외국인 2세, 귀화 내국인일 정도로 비중이 커질 전망이다.
그런데도 이주민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 수준은 형편없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22 인권의식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우리 사회가 이주민에 대해 혐오 또는 차별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10명 중 3명은 이주민이 이웃이 되는 것을 꺼렸다. 여성가족부의 ‘2021년 국민 다문화 수용성 조사’를 봐도 성인의 다문화 수용성은 52.27점으로, 2018년(52.81점), 2015년(53.95점)보다 뒷걸음질쳤다. 이주민들이 “인종차별이 심하다”라고 비판하는 게 무리가 아니다.
사회통합을 위한 대비도 미흡하다. 지난 6월 화성 아리셀 리튬전지 공장 화재 참사에서 보듯 외국인 노동자의 근로 환경은 너무 취약하다. 지난해 산재사고 사망자 중 외국인 비율은 10.5%로, 내국인보다 3배 이상 높았다. 열악한 비닐하우스에서 살다가 일산화탄소에 중독돼 숨지는 사고도 종종 발생한다. 이주민이 갈수록 늘고 있지만 일반 국민과 다문화가정 자녀의 학력 격차는 커지고 있다. 다문화 교육 수준은 기대에 못 미친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민·다문화 정책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외국인 관리 업무는 컨트롤타워도 없이 10여개 부처에 흩어져 있다. 현재 법무부가 이민자와 외국 국적 동포, 고용노동부는 외국인 근로자, 여성가족부는 결혼이민자와 다문화 가족, 외교부는 재외 교포를 대상으로 각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정책의 통일성이 떨어지고 중구난방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미국 등 선진국들이 고급 인재를 유치하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우리는 너무 안이한 것 아닌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법무부 장관 재임 시절 이민청 설립을 야심 차게 추진했다. 하지만 이민청 설립 법안은 소관 상임위에서 별다른 논의도 하지 못한 채 21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한 장관 퇴임 후 추진 동력이 떨어졌고, 더불어민주당도 이민 확대에 부정적인 일부 여론의 눈치를 보고 있는 탓이다. 여당 의원들이 22대 국회에서 재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영 미덥지 않다.
세계 최고의 저출산 고령화 국가에서 외국 인력 유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국내 생산가능인구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이민 정책은 단순한 노동력 유입이 아니라 우리 사회와 공동체의 변화를 수반하는 일이다. 국민 인식 개선이 가장 중요하다. 단일민족 논리에 갇혀 외국인 주민을 출신국이나 외모, 종교 등 이유로 차별해선 안 된다. 외국인 주민은 꼭 필요한 우리의 이웃임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포용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선진국 대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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