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1심 선고일이던 2018년 4월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정문 앞엔 포청천에서나 봤던 개작두와 검게 칠한 관이 놓여 있었다. 비록 모형이었지만 실물과 비슷한 크기로 만든 그 흉물들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를 겨눈 명백한 협박 메시지였다. 법정 안에서 “대통령님께 경례”라고 큰소리로 구령을 붙였다가 쫓겨난 방청객은 이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박 전 대통령의 일부 지지자가 그 무렵 법원 안팎에서 보였던 모습이다.
재판부는 온갖 압력을 감수하며 꿋꿋이 재판을 이어갔다. 박 전 대통령이 재판 보이콧을 선언하자 궐석재판을 이어가는 뚝심도 발휘했다. 나아가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의 판결 선고를 생중계하는 결단도 내렸다. 재판부로선 재판 결과가 또 다른 분란을 야기할 가능성 못지않게 얼굴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부담도 컸을 것이다. 재판장은 103분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판결서를 낭독한 뒤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을 선고했다. 진보 진영은 그런 재판부를 열렬히 성원했다.
그때 그 재판장이 법원장이 돼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 피감기관장으로 발언대에 섰다. 법원장을 대하는 야당 태도는 과거와 사뭇 달랐다. 그가 근무하는 법원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대북송금 사건 재판이 진행되고 있어서다. 야당은 “이 대표에 대해 유죄 심증을 드러낸 재판부가 재판을 맡는 게 타당하냐”, “(재판부가) 노골적인 편파도 있는 것 같다”,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을 고려해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재판에 넘겨진 이 대표의 변호인단이 법정에서 할 법한 말들이 다른 곳도 아닌 국감장에서 의원들의 입을 통해 거리낌 없이 툭툭 튀어나왔다.
그것으로도 모자란지 이번엔 친명(친이재명) 최대 계파가 6년 전 개작두가 놓였던 그 자리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예고했다.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사건 1심 선고일인 15일 법원 앞에 약 5000명이 몰려가 정치집회를 하겠단 것이다. 이러한 기세대로면 이 대표의 검사 사칭 관련 위증교사 사건 1심 선고일인 25일에도 같은 자리에서 ‘이재명 수호’ 집회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의 ‘개딸’ 지지층이 대거 집결할 것이다. 이들은 ‘재판부 압박’ 의도는 없다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국민이 많지 않을 것이다.
삼권분립 원칙이 서 있는 한 누가 뭐래도 유·무죄 판단은 엄연히 법원 몫이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는 오직 법리와 증거 다툼의 장이어야 할 법정마저 극단화한 진영논리로 두 쪽 내려고 작심한 듯하다. 원하는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진영 전체가 법원을 겨눠 포문을 열 태세다. 그렇게 정치와 사법을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게 함으로써 완전한 ‘사법의 정치화’를 이루고 싶은 듯하다. ‘남의 편’ 수사하는 검경은 우리 편, ‘우리 편’ 수사하는 검경은 남의 편인 게 우리 정치권이 보여온 행태다. 이젠 법원도 그런 잣대로 보려는 듯해 개탄을 금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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