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세계 니켈 공급량 4분의 1 차지
현지 공정 협력 땐 배터리 업계 등 호재
중위연령 24.5세… 인구 꾸준히 증가세
필리핀내 산업현장 인력공급 여력 충분
한류 확산 힘입어 K뷰티 화장품 등 인기
섬 많은 지형 영향 소형모듈원전도 유망
기존 제조업의 중심은 중국이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이 경쟁을 벌이면서 중국과의 경제관계도 변화가 필요하게 됐다. 이런 가운데 필리핀은 ‘스마트하고 지속 가능한 동남아시아의 제조 및 서비스 허브’를 비전으로 삼아 적극적으로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한국도 주요 협력 대상국이다.
세페리노 S 로돌포 필리핀 통상산업부 차관은 3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세계일보가 주최한 ‘2024 세계아세안포럼’에서 기조강연자로 나서 “한국, 일본 대만의 제조업 시설이 중국에서 자국으로 돌아가고 있다”며 “필리핀은 동남아 국가 중 한국, 일본, 대만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미국과도 인접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로돌포 차관은 “한·필리핀 협력이 고령화와 기후변화, 지정학적 긴장 등 당면한 과제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필리핀의 중위연령은 24.5세로, 한국 중간연령의 45.1세보다 낮다. 필리핀은 2080년까지도 인구가 증가하는 나라다. 필리핀 산업 발전에 인력 공급이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산업 분야와 관련해 로돌포 차관은 ‘전기차와 그린메탈(녹색금속·신재생 에너지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광물)’을 강조했다.
필리핀은 전 세계 니켈 공급량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니켈은 전기차용 이차전지의 주요 원료다. 98%를 중국으로 수출하는데, 중국은 상당 부분을 한국에 수출하는 상황이다. 로돌포 차관은 “양자 FTA가 발효되면 한국은 니켈의 제3자 의존도 낮추고 필리핀에서 바로 수입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필리핀 현지에서 니켈 공정에 협력하면 배터리와 전기차 업계에 긍정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로돌포 차관은 인프라 개발 중인 루손 지역과 레이테 지역을 소개하면서 “한국 기업이 할 일이 많을 것이다. 발전시켜가면 된다”며 “FTA 투자처를 찾을 때 기회를 찾아보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로돌포 차관은 “필리핀과의 협력은 인적자원과 천연자원, 전략적 요충지, 시장규모 이점을 누릴 수 있고, 미국과 유럽 시장으로의 접근성도 높아진다”며 “한·필리핀 FTA로 탄탄한 협력 체계가 맺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샤르멘 미뇽 S 야롱 필리핀 통상산업부 상무관은 “필리핀은 동남아시아의 허브로 변화하고자 한다”며 “스마트하고 지속 가능한 제조 및 시장에 기반을 둔 민간 부문 역량 강화에 의한 서비스 제공을 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산업 발전을 공유하는 주요 경제 국가와 협력하고자 하는 필리핀의 열망을 반영한 것이 한·필리핀 FTA”라고 소개했다.
야롱 상무관은 “FTA가 발효되면 한국은 필리핀 열대과일 수입 관세가 감축돼 혜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주요 광물 가공, 각종 기기, 장비 등도 큰 혜택을 볼 수 있는 분야”라고 말했다. 이어 “산업화 촉진과 연구개발(R&D), 제조는 물론이고 사회문화적 측면, 예술, 지적재산, 기술규정, 또 전자상거래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서 혜택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야롱 상무관은 양국의 주요 협력사업도 소개했다. 양국은 필리핀국립대(UPLB)에 농업유전체학연구센터(AGRC)를 착공하고, 한국의 농업기계 기술을 이전하는 농업기계 협력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또한 2025년 12월을 목표로 FTA 관련 정보 포털을 준비하고 있다.
이어진 토론에서 주동필 한국무역협회 FTA활용정책실장은 한·필리핀 FTA를 통해 자동차 산업과 전기차 배터리 제조, 원전 분야 등에서 협력이 가능할 것으로 봤다.
기존 한·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FTA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선 개방되지 않았으나 이번 양국 FTA에서는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에 대해 관세를 철폐했다. 전기차 배터리 제조와 관련해서는 니켈 등 원료 수급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주 실장은 “한·필리핀 FTA 가장 큰 수혜 품목은 자동차 아닐까 생각한다”며 “자동차와 더불어 5년 내 철폐해도 친환경차, 전기차, 자동차부품 수출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한류 확산과 더불어 김, 라면 같은 가공식품과 배, 딸기 같은 필리핀에서 나지 않는 신선과일, K뷰티 화장품 수출이 늘 수 있다”며 “애완동물용 사료와 제품, 커피와 분유, 관세가 철폐되는 수산물 등도 수출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주 실장은 에너지와 관련해서는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4기 가동이 성공하고 체코에서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되는 등 한국 원전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양국 원전 기술 협력이 활발해질 것”이라며 “섬이 많은 필리핀 지형적 특징을 반영해 소형모듈원전(SMR)도 유망할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신민금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양국 경제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필리핀으로부터 수입을 확대하고 필리핀 공급망을 확충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필리핀은 한국 기업을 더 많이 유치하기 위해 제조업 투자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며 “한국 제조업체나 서비스 업체도 필리핀에 투자하면 좋을 것이다. 인프라 확장을 위해 한국의 ODA(공적개발원조) 자금을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 연구원은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한국의 노동력 부족 문제에 대응해 한·필리핀 간 사회문화 협력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한아세안센터(AKC), 아세안문화원 등을 통해 한국 내 필리핀 문화 이해를 증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